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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용의 재즈경영스쿨

[재즈스타일] 이젠 그만 악보를 찢고 네 자신이 악보가 되어라


이젠 악보를 찢고  네 자신이 악보가 되어라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을 하고 단상에 오른 지휘자는 자신을 잘 따라오면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는 듯이 힘차게 지휘봉을 높게 치켜들었다.

난 그저 주어진 악보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지휘자가 이끄는 데로 잘 따라 연주하면 수많은 관객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보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관객들은 더 이상 우리의 음악을 원하지 않았다. 오만한 듯 자신감 넘쳤던 그 지휘자는 단상으로부터 도망가버렸다.


악보를 찢어라

세상은 이미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지휘자만 보고 악보대로 연주만 하면 되었던 시대의 패러다임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공연장의 관객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 50대에 직장을 잃은 사람, 취업을 못하고 학력만 높아져가는 20~ 30대, 무너지고 있는 수십만의 자영업자. 이들에게 해답이 되는 악보를 선사해줄 지휘자는 이제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지휘자도 사실은 일자리를 찾아 먼 길을 떠나버렸다.

이제는 악보가 필요 없는 시대다. 세상은 이미 누군가가 그려준 악보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악보보다는 자신의 판단, 직관, 능력을 믿어야 한다. 이제는 악보에 의존하는 음악이 아닌 내 목소리, 내 음악을 찾아가야 한다. 악보를 달라고 하기에 앞서, 나는 무슨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함께 연주할 사람은 어디에 있으며 또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이제는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때가 왔다.




악기를 연주할 때 악보를 보는 습관을 들이면 악보 없이는 절대로 연주할 수 없다.

이제는 악보를 스스로 찢어야 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자신의 가슴 속에서 떠오르는 멜로디 선율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대응하는 연주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의무라는 오선지에 책임이라는 음표가 촘촘히 그려져 있는 악보는 이제 활활 태워버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과감히 바로 연주하기 시작해야 한다.

나 또한 대학 들어올 때까지 정말 충실하게 악보만 보고 살아온 삶이었다.
전공도 원하던 과를 가지 못하고 세상과 부모들의 잣대로 만들어놓은 악보대로 선택을 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이과였지만 그림에 소질이 있고 창작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건축과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기계계열학과를 가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꼭 건축과에 가겠다고 버텼으나 온 집안 식구와 친척까지 동원된 협공에 그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 협공은 ‘장남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 인식(뭐가 모범인지는 모르겠으나)’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조장’이었다.

그러나 역시 결정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조장’이었다. 그 이후로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다시 찾아 떠나기까지 장장 8년이란 세월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내 꿈과 미래를 세상과 흥정했다는 자괴감에 무척이나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너 자신이 악보가 되어라

어느 시점에 이르러 나는 이제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평소에 즐겨 듣던 버드 파웰과 셀로니우스 몽크의 레코드를 모두 창고에 넣고는 문을 잠가버렸다. 그렇게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몰두하던 어느 날, 비로소 나의 연주는 더 이상 버드 파웰이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

비밥 시대에 버드 파웰과 셀로니우스 몽크란 당시 수많은 재즈 피아노연주자들에게 ‘큰 바위 얼굴’ 같은 존재였었다. 이 두 거대한 산을 넘는 것이 당시 피아노 연주자의 커다란 관문이었다. 한때 이들의 추종자였던 호레이스 실버는 과감히 이들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펑키하면서도 블루지한 느낌이 절묘하게 접목되어 있는 하드밥 스타일을 창조했다. 특히, 리듬앤블루스, 가스펠, 그의 뿌리였던 포르투갈 민속음악의 요소가 잘 섞여 있는 그만의 펑키 피아노 스타일은 후에 수많은 재즈 피아니스트와 현대 재즈음악에큰 영향을 끼쳤다.




재즈연주에 입문할 때, 처음에는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카피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차츰 실력이 쌓이게 되면 점차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웹 2.0이 집단지성의 시대였다면 웹 3.0 시대의 화두는 단연코 ‘개인화’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명의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시대가 곧 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다른 이와 다른 ‘나’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당당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요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TV 광고카피가 있다.생각대로 해, 그게 답이야.” 하지만, 솔직히 지금 한국적 상황에서 그렇게 실천으로 옮기기는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생각대로 했다간 다들 큰일 나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 가는 대로,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결국 답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는 맞고 틀리고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처럼 변화가 많은 시대에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틀릴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를 충분히 인지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또 그 ‘다른 나’스럽게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다른 이와의 ‘비교’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난 ‘절대’적으로 스스로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그런 나를 섬세하게 찾아나가고 또 찾은 바대로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나가는 것이 진정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재즈는 결과의 음악이 아니라 과정의 음악이다. 클래식처럼 원작자 창작의 결과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재즈는 순간순간 연주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음악이자 악보가 된다.

매일 그려지는 오선지 위에 내가 내리는 선택 하나 하나가 음표가 되고 그것이 이어져서 오늘 하루의 내 멜로디가 탄생한다. 당신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악보다. 그 악보의 멜로디가 감동스럽다면 누군가가 당신의 악보를 채보해서 열심히 따라서 연습할 것이다.

만약 그런 오선지가 쌓여서 하나의 이어지는 멜로디가 되면 내 인생을 연주하는 한 편의 장대한 곡이 될 것이다. 그 곡이 사람들 가슴에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면 난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사람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 수가 있다.

우리는 이제 악보를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악보가 되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라. 그게 정답이고. 삶에 있어서는 재즈스타일의 시작이며, 경영에 있어서는 재즈경영의 첫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