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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니언 일본전문가

[코페니아컬럼] 간바레! 일본, 새로운 일본을 기대한다.


<코페니아컬럼 3 – 간바레! 일본, 새로운 일본을 기대한다>                          -  한일저널 4월호 게재

일본은 정리의 나라다.  모든 것이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공간과 물건에 대한 정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간의 관계, 습관, 생각, 심지어 감정까지 모두 자기 자리가 있다. 

그 것은 정부나 기업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밀회로처럼 잘 설계되어있는 매뉴얼을 만들어냈고 이를 따라하면 별문제가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전 일본을 지배해왔다.  사실 꼼꼼한 매뉴얼을 남기기 보다는 임기응변식으로 많은 일을 처리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배워야 할 점이라고 우리는 누누이 일컬어왔다.

그런데 돌연 쓰나미가 들이닥쳐 이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있던 판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이번 쓰나미로 주차장에 있어야 할 자동차가 옥상위로 올라가 버렸고 학교안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학생들은 허름한 체육관 강당의 차가운 마루바닥에서 얇은 담요 한장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런 잘 정리된 책장같았던 나라가 순식간에 모든 것이 뒤엉켜버렸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뒤,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폐허가 된 마을을 보면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결벽증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그런데 지난 3월 17일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의 한 대피소 앞 광장에 갑자기 미군 헬기가 착륙했다. 헬기에서 내린 미군들이 식료품과 음료수 등 지원물자를 운동장에 내려놓자 먹을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피해주민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워했다.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식료품과 비상물자들을 보냈지만 일본 정부가 “관련 매뉴얼이 없다”는 이유로 전달을 늦추자 보다 못한 미군이 직접 물자를 전달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원전에서 네 차례나 폭발이 발생한 뒤인 16일에서야 원전냉각 작업에 투입된 것은 도쿄전력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요청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방위성 대변인의 설명은 매뉴얼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린 일본 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초기 원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즉시 해수를 투입하여 원자로를 냉각시켜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IAEA 의 권고를 철저하게 묵살하고 자기식대로 사태수습에 나섰으나 결국 원자로 폭발로 이어졌다.
일본 특유의 문화인“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ご迷惑をかけない)”것은 세계인은 안중에도 없고 자국내의 일본인에게만 통하는 것일까?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비싼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고 매뉴얼식대응을 하다가 결국
세계인으로 하여금 방사능의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일본의 한 정부 관계자는 "후쿠시마(福島)원전사태는 60%가 인재(人災)입니다."라고까지 말했다. 원전사고의 발단은 지진과 쓰나미였지만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악화된 것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십중팔구 '선조치 후보고' 식의 과감하고 신속한 대처를 했을 것이다.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터졌을 때 즉각적으로 군인과 경찰이 동원된 것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제각기 바위에 들러붙은 기름덩어리와 싸웠다.
지나칠 정도로 매뉴얼에 집착하는 일본식 문화가 어느 정도 예상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재난이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대지진처럼 전대미문의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패닉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장점이 곧 단점으로 바뀌고 단점이 또 장점으로 바뀌는 데는 불과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일본특유의 치밀한 매뉴얼문화가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부각되어 고지식하고 구태의연하다고 질타를 받고 있지만, 사실 매뉴얼화는 그동안 늘 한국인이 부족하다고 느껴왔던 점 중의 하나로 오히려 배워야 한다고 인정했던 일본의 장점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이라든가,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재난을 겪을 때마다 한국의 TV나 신문등에서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각종 안전대책으로 매뉴얼화되어 있는 일본의 현장, 관계자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한국은 일본을 보고 반성하고 배워야 한다고 방송을 통해 보여주곤 했다.

전 컬럼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을 양과 음이라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 만큼 서로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장점을 잘 관찰하면 내 단점의 아픔이 뼈가 시리도록 다가온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안전함의 대명사였던 일본이 이번 대형쓰나미로 졸지에 “불신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앞으로의 시대는 눈에 안대를 하고 타는 롤러코스터처럼 상하좌우가 뒤바뀌고 주객전도가 별안간 발생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 다가올 지 모른다.  즉, 이번 쓰나미사태처럼 일본의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듯이 한국의 장점도 영원할 수 없고 얼마든지 갑작스럽게 단점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추락할 때 서로 끌어올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종의 보험이 되지 않을까?  아니, 추락하기 전에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내 단점을 보완하여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는 리스크관리(Risk Management)까지 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 쓰나미로 인해서 그간의 역사와 독도문제 등으로 감정적으로 대치되었던 한일간에 따뜻한 온정이 피어나고 있다. 사상 유래없이 일본돕기 모금운동이 일어나면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이 일본을 도와주는 데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배용준씨의 10억이라는 쾌척을 시작으로 수많은 한류스타와 대기업, 그리고 일반 시민할 것없이 일본지진모금운동에 나섰다. 혹자는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중국 쓰촨성지진 때에 3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어도 지금처럼 왕성한 모금활동은 없었다. 아마도 일본인이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의 민족중에서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DNA를 가지고 있기에 한 형제라는 것을 잠재적으로 모든 국민이 느끼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는 지금껏 독도문제, 역사문제 등으로 반일감정이 높았던 단체마저 일본돕기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례적인 현상을 보면서 이번 일본지진을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이 한 형제로서 상생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올해가 실천해나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앞서서 일본은 정리의 나라라고 했지만,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일본의 변화와 성장에 한계를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리가 잘 되어있다함은 안정적이다라는 말과 동일하고 이런 상태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험을 기피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스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지금까지 지속이 되어왔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일본은 자체적인, 자발적인 동기로 혁신을 일으키기가 어려운 나라다.  기존의 룰과 제자리에서 좀처럼 벗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과 도전정신을 잃어버린 니트족, 히키코모리와 같은 일본 젊은 층, 저성장, 자신의 폐쇄성을 어찌할바를 몰라 스스로를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까지 자조적으로 일컬으며 주저앉아있다.  그렇다고 지금 변화를 가져올 만한 리더십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의 참혹한 쓰나미를 오히려 기존의 일본을 바꾸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고베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도 6400여 명이 사망하고 10조 엔(약 130조원) 상당의 피해를 겪었지만, 재건하여 지금은 첨단 패션시티로 발돋움하고 있다. 더나아가 앞바다까지 메워 인공섬을 개발해 세계 최고의 의료연구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대지진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수많은 사망자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일본은 이를 새로운 일본이 탄생하는 부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부활의 순간에 한국이 함께 하기를 바라고 한국 또한 새롭게 태어나는 일본과 상생구조로서 거듭나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그 무엇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예측불가능한 시대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자극이자 안전한 보험역할이 되어줄 수 있는 파트너로서 안성맞춤이다.   이제는 양국이 더욱 미래지향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나가기를 바란다.

간바레! 일본.(頑張れ!日本)  옆에서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