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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니언 일본전문가

[기획연재] 한일의 팬문화 차이

          
<한일 팬문화의 차이>                                                                               
-  한일저널 4월호 게재

“저리 좋을꼬?”  아들뻘의 한류스타를 보고 열광하는 일본 중년여성을 보고 한국의 한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다.
한류스타를 잠깐 보기위해 비행기를 전세내어 줄기차게 한국으로 오시는 일본중년여성 팬들을 보면 의아해하고 때로는 극성이라고까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에서 가수겸 배우로 활동했던 박용하씨가 자살했을 때에도 그의 친구, 친척보다 더 빨리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그의 장례식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도 일본팬들이다. 
그들에게 이런 “한류스타”란 어떤 존재이고 팬으로서 어떤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까?

한 시대의 대중음악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가수, 작곡가들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들도 함께 그 작업에 동참한다. 대중이 “호응”해주지 않는 “대중음악”은 이미 그 자체로서 존재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대중들이 어떤 아티스트의 작품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의 방향이 나오고 더 나아가 음악산업이 좌지우지된다.

여기서 일본이 지금처럼 거대하면서도 매우 세분화된 그리고 탄탄한 음악시장구조를 갖게 된 것은 일본대중들의 역할이 적지않다. 일본음악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들의 팬문화이다.

일본인에게는 옛날부터 가부키나 스모에 통용되는 “후원자 문화”라는 것이 있다. 수많은 아이들중에서 히이키노 코(ご贔屓の子:가능성을 보고 후원하는 아이)를 발견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내가 선택한 소위 “인재”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것이다.  마치 삼촌이 조카를 보듯이 그 “인재”가 처음에는 어설프더라도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함께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그 “인재”가 드디어 스타가 되었을 때 나도 그 스타를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라는 보람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아티스트를 소중히 생각한다.


최근에 비슷한 예가 영국에서 시작하여 미국, 그리고 한국에도 상륙한 서바이벌 리얼리티같은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출연자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한국은 엠넷(M-net) 케이블방송에서 “슈퍼스타 K”란 프로로 시작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방청자는 출연자의 곡절많은 개인사와 꿈을 향해 도전해나가는 열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친근감을 느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이후 각종 방송사에서 연이어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 유명한 연예프로덕션으로 스마프(SMAP), 아라시, V6 등 당대 최고의 아이돌을 키워낸 “쟈니스(Johnny’s)”가 있다.  쟈니스에는 “쟈니스 주니어”라고 불리는 신인그룹이 있는데, 이들처럼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구생이나 주니어가 되면 레슨을 계속하며 선배들의 라이브 공연과 행사 등에 백댄서로서 관객들 앞에 선다.  일본의 관객은 그 “주니어”들을 소속사에 갓 들어간 어린시절부터 성장할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보는 셈이다. 이 것은 하나의 게임과 같다.
처음에는 “주니어”들이 아마추어티를 내며 어딘가 부족한 듯이 보이지만, 차츰 노래나 댄스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뻐해주고 그들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유명 스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비록 유명한 메이저 아티스트가 아니고 마이너 아티스트라도 상관없다.  자기 소신을 가지고 지속적인 응원과 후원을 해준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같은 CD, DVD 를 2장도 산다. 하나는 평상시에 듣는 용이고 또 하나는 보관용이다.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아티스트를 소중히 여기고 후원해주는 기반위에서 각종 다양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때 탤런트 신신애씨가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를 히트시켰다.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마도 이 부분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해서 인기를 끌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국음악시장의 현실은 계획적인 음악시장의 구축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별한 목표보다는 그저 돈이 되는 곳이 중요했고 이에 따라 우후죽순 격으로 음악시장이 성장했다. 그 와중에 소위 짝퉁 앨범들이 오히려 진품 앨범보다 더 많이 팔리게 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고 그것은 곧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정작 오리지널을 만든 사람은 돈을 못벌고, 재빠르게 베껴서 가짜 앨범을 만들어낸 사람은 떼돈을 벌게 되는 것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에 관해 어떤 일본인이 일본에서 실험을 해봤는데 1/3값에 가짜 앨범을 만들어 팔아본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거의 0%에 가까운 판매를 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인은 가수의 초상권이나 저작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일본 대중들의 의식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에서는 관객 앞에서 처음부터 프로페셔널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회가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무조건 떠야 한다. 그래야 음악을 지속할 수 있다. 뜨기 위해서 각종 연예프로에 나와 개그맨못지않은 입담을 뽑내야 하고 별 오도방정을 다 떨어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때로는 가학적인 연기도 불사한다.
그렇게 해서 한번에 “짠~” 하고 나타나야 한다. 완성된 모습을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개그면 개그 한번에 확실히 보여주면 단번에 스타가 될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인이 줄기차게 데뷔하기 때문에 금새 인기를 얻지만 또 금새 인기도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면 새롭게 등장하는 신인들에 밀려 금새 잊혀지고 만다. 그리고 일단 한번 한물가면 다시 뜨기가 매우 어렵다.

얼마 전 모 방송의 연예프로그램에서 옛날 세시봉에 활약했던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조영남 등이 출연하여 들려주었던 음악은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유행가수와 음악이 바뀌는 세태에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때 전성기의 순간을 함께 했던 50~60대 팬들이 대거 녹화홀에 참석하여 그 공연을 관람하며 향수에 젖어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팬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아티스트를 갖기가 어려울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는 호흡이 너무 짧다.  한 아티스트가 자기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기까지, 소위 명곡이 탄생할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고 응원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아티스트에게는 한번에 대박나고 다음에 바로 접는 것보다 정작 필요한 것은 200명 남짓의 진정한 자기팬의 유무다.  만약 내 팬이 200명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세월이 가도 꾸준하게 호응해주는 팬이 있다면, 나는 평생 음악을 할 수 있다. 다른 이야기로 일본에도 , 미국에도 그 정도의 자기 팬이 소수라도 꾸준히 존재한다면 그 나라에 가서도 음악활동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보컬중 하나인 웅산이라고 하는 가수도 98년부터 일본 활동을 시작해서 2004년부터 인디즈 레벨을 통해 앨범을 발매, 수많은 라이브클럽과 공연을 통해 조금씩 일본내 팬을 늘려갔다.

나는 2007년 8월8일에 일본파트너와 함께 한일공동기획으로 음악페스티벌 (BIG WING Music Festival)을 시모노세키에서 주최했었다.  그 때 나는 한국측 프로듀서로서 한국대표로 웅산씨를 선택해서 출연시킨바 있다. 당시 일본측 아티스트로서는 25년이 넘은 세계적인 살사밴드 오케스트라 데라루즈(Orquesta DE LA LUZ)와 일본의 대표적인 포크가수 미나미 고세츠(南こうせつ)씨가 출연하여 재즈, 블루스, 살사, 포크등 다채로운 음악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룬 공연을 펼쳤다.  당시 웅산씨는 일본관객과 음악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가 웅산은 2008년 포니캐년에서 [Feel like making love]를 발매하며 성공적인 메이저 데뷔신고식을 치루었다. 그 후 5집 정규 앨범 [Close your Eyes]의 일본 선발매를 통해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일본 최고의 재즈 전문잡지 <스윙저널>에 메이저 데뷔 일년 만에 한국인 최초 골드 디스크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10년만에 얻은 쾌거다. 그 것이 가능했던 것은 수는 적었지만 장기간 꾸준히 웅산씨를 후원해준 일본인 팬들이 있었다.

한국의 대중들은 이야기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들을만한 음악이 없다고, 뻔한 음악과 화려한 댄스로 말초신경만 건드리는 아이돌음악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사방에서 “들려지는” 아이돌음악외에 재즈, 라틴, 락 등 다양한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고” 가끔 공연장에도 가줘라.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앨범도 사주고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이라도 팬이 되어서 한번 후원을 경험해보라. 본인에게도 신선하고 새로운 문화체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이 자기 고집을 꺾지않고 자기음악을 해나갈 수 있는 뮤지션을 하나라도 키우는 길이고, KPOP 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숨을 쉬게 만드는 일이다.

꼭 일본인같이 비행기를 타고 공연을 보러가지는 않더라도, 짝퉁앨범을 구입하지 않는 행동, 합법적인 음악파일 다운로드, 때론 실력있는 신인들을 가요평론가보다 먼저 발견해내어 관심을 보여주는 것 등 일상 생활 속의 조그만 실천이 지속될 때 언젠가 그 대들이 듣고 싶어하는 다양한 음악이 길거리에 흘러넘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