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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니언 일본전문가

[코페니아컬럼] 한일은 서로에게 처방전. 상생하라

<한일은 서로에게 처방전.  상생하라>

지금은 상생의 시대다. 
상생한다는 것은 경쟁구도에서 상대방을 보는 것이 아닌, 나와 상대방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시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전제조건이 나 자신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즈밴드에서 하이톤을 갖고 있는 트럼펫이 트롬본이나 베이스등의 낮은 톤의 음색을 들으며 “왜 저들의 음색은 낮고 굵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런 질문자체가 우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음색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나의 음색과 어떻게 만나야 좋은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한일간은 라이벌구도, 즉 경쟁구도로 많이 서로를 견주어 왔다.  분명 그런 라이벌의식이 서로간의 성장을 촉진하고 더욱 분발하게 만든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이 지나쳐 과도한 경쟁의식으로 쓸데없는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한 적도 적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젠 한일이 서로를 볼 때 Better 의 관점에서 Different 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하지않을까?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며 이 분야는 내가 낫고 저 분야는 네가 낫다고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 함께 어떻게 협력(collaboration)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것이 상생이 성립하기 위한 첫스텝이 아닐까?

나 또한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일본을 보았고 일본에 살 때는 일본인의 시각에서 한국이 보였다.
그런데, 나의 시각에 변화가 생긴 것은 미국유학시절 재패니스타운가의 일본식당가에서 일하면서부터였다.
7~8개 다양한 일본식당이 즐비해있었고 그 외 다양한 일본계 샵들이 모여있었던 이 곳은 미국안의 작은 일본사회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인 1명,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을 제외하고는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그 속에서 일하면서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자의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을 냉정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 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처방전이 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첫 컬럼 때 한일을 양과 음으로 인식한다고 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그 동안 나의 한일에 대한 직간접경험과 이에 따른 생각을 키워드로 뽑아 재구성해본 것이다.

물론, 이것이 100% 그렇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사람에 따라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있어서 “한국인은 이렇고 일본인은 이렇다”고 흑백논리로 접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한일교류시 비교적 서로 이해하기 쉽고 협력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은 뜨겁다. 감정적이다. 속전속결을 좋아하고 조금이라고 가능성이 보이면 모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인은 냉철한 편이고 이성적이다. 시간이 걸리더라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간다.   가능성보고 모험을 하기보다는 리스크를 피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춘다.

이 두 방향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필요한 존재다.

상대방을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고, 그 모자람을 채워 더욱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음양의 조화, 중용의 철학처럼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추어가며 각자의 성향과 목적에 많게 운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잘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하나는 리스크관리가 될 수 있고 한국병, 일본병을 치유할 수 있는 특효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만성적인 낭비병, 비생산성을 치유하기 위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수용한 일본의 낭비제거라든지 5S(정리정돈청소청결체질화)운동 등은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이제는 일본에 안착이 되어가는 한류도 어찌보면 일본에 대한 하나의 처방전 이라고 볼 수 있다.
반일감정이 드세던 때부터 근 40년간 한국을 연구한 오코노기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엔 숨어있는 한류팬이 아주 많다. 나는 한류가 일본사회를 구했다고 평가한다.”라고 단언한다.  20~30대 젊은이위주의 드라마편성 등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되었던 중년, 노년 특히 중년여성들에게 하나의 정신적인 치유제역할을 한 것이 한류드라마이다.


내 주변 일본인들을 보면, 한국에 와서 삶의 여유, 개방성, 정(情), 가족애 등을 느끼고 가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의 정확성, 타인에 대한 배려심, 구체적인 현실감각 등 많은 장점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이렇듯 하나의 개인에서 기업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한일간은 서로의 장점에서 자극을 받고 때로는 서로를 배우며 성장해왔다. 이제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상생의 접점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는 지금, 이제는 “한일”이라는 서로 마주보는 개념보다는 “아시아인”으로 같은 방향을 보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을 키워주는 상생관계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서로에게 약이 되어주며 함께 조화를 이루어나갈 때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멋지고 훌륭한 창조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